Nonviolence Hand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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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직자들 중 몇몇과 모든 트레이너들은 트레이닝을 계획하기 위해 사전에 미리 제대로 만나야 한다. 상황에 따라 조직자들은 추가적인 의사결정을 위해 그룹으로 다시 돌아가 상의할 필요가 있을 지도 모른다. 트레이너들의 질문은 트레이닝을 위해 조직자들이 그룹 차원에서 무엇을 더 준비해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2) 트레이닝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할 지 상의하라. 하루 만에(몇 시간?)? 아님 한 주 내내? 트레이닝이 캠페인 개발 과정과 발맞춰 진행될 수 있을까? 캠페인을 기획하기 위해 시리즈로 트레이닝을 진행할 필요가 있을까? 몇몇 그룹들은 캠페인을 계획하고 준비하기 위해 한 주 휴가를 낸다. 만약 사람들이 비폭력행동을 위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와야 한다면 어떻게 트레이닝을 계획할 수 있을까?

3) 트레이너들은 참가자들에 관한 정보가 필요하다. 참가자들이 이번 행동을 위해서 일시적으로 모인 사람들인지 아니면 정기적으로 만나는 사이인지. 비폭력행동에 대한 그들의 경험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이전에 트레이닝을 받았던 경험이 있는지. 비폭력행동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종류의 것이었는지.

4) 비폭력과 트레이닝에 대한 조직의 접근법에 관해 토론하라. 그것은 비폭력 가이드라인들을 가지고 있는가?

5) 캠페인 조직자들에게 행동의 구체적인 정보에 관해 트레이닝 프로그램 중 하나로 소개해줄 것을 부탁하라. 예를 들어, 행동의 구체적 시나리오, 캠페인의 배경 등. 이 소개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발표자에게 명확히 하라.

6) 어떤 종류의 유인물이 필요할지 확인하라. 만약 필요하다면 지도 및 사진들을 이용하라.

7) 누가 비품들(마커, 종이, 테입, 유인물 복사, 핸드북, 영화상영을 위한 장비, 기타 등등)을 챙기는지, 음식 혹은 다른 필요물품을 준비하는지 명확히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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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lan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국제 행진(The International Nonviolent March for Demilitarisation,IMD)은 1976년부터 1989년까지 유럽에서 진행된 연례행사이다. 이 행진은 '동질그룹 모델'과 '합의를 통한 의사결정' 모델을 바탕으로 비폭력 트레이닝을 조직하는 방식이 널리 퍼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이 행진에 네 번 참여를 했고 이 중 세 번은 행진 준비자로서 참여를 하였다. 내가 직접 준비를 했던 행진들은 다음과 같다. 1983년 브뤼셀에서 있었던 IDEE(전자 방어 전시회) 반대 행진, 1984년 독일 그레번하인에서의 행진(군사작전구역인 풀다-갭 지역에서 군사작전을 방해하는), 그리고 1985년 덴마크에서 핵무기에 반대하는 행진이었다.

내가 참가했던 첫 행진은 1979년 독일 람슈타인에서 있었다. 우리는 당시 동질그룹을 조직해서 합의를 통한 의사결정과정을 진행했으며 대표자 회의(각 동질그룹의 '대변인' 회의)를 진행하였다. 이 때 이후로 대부분의 캠프, 행진, 행동들은 합의를 통한 의사결정과 동질그룹 모델을 도입하여 활용하였다. 이렇게 말하고 나면 마치 그 당시에는 비위계적인 방식을 가진 비폭력 운동이 큰 유행의 바람을 탔던 것처럼 보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은 내가 그런 비폭력 트레이닝이 준비되어 있는 행사에만 참여해서 그렇게 보였던 것일 수도 있다.

1982년, 나는 처음으로 '트레이너를 위한 트레이닝'에 참여를 했다. 거기서 나는 동질그룹 모델과 합의를 통한 의사결정과정에 대해 좀 더 배울 수가 있었다. 1980년 대에는 비폭력 트레이닝에 대한 욕구들이 높았고, 인기 있었던 주요 주제 중의 하나는 '비(非)위계적인 방식으로 비폭력 직접 행동을 조직하는 법'이었다.

나는 이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국제 행진' 참여자들이 지닌 다양한 배경들이 행진에 좀 더 활기를 불어넣는 요소라고 생각했다. 참여자들은 각자의 지역으로 돌아가 자신들이 경험한 새로운 운동방식을 알려냈다. 또한, 이 행진이 갖는 국제적인 성격은 지역적인 차원에 한정되어 펼쳐지는 행사에 비해 좀 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매력으로 작동하였다.

이 행진을 통해 우리는 다른 관련 사안들을 다루고 서로의 연계점을 찾기도 하였다. 한 예로, 내가 게슈탈트 심리요법을 배우게 되었을 때 나는 이를 바탕으로 사람들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개인적인 성격 특성들에 대처하는 방법에 적용을 하였다. 게슈탈트 심리요법은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G8 반대 행동에 적용해 볼 수도 있다. 언젠가 한번은 한 기자가 다음처럼 말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아마 이번 (G8반대)행동을 통해 변화한, 즉 이 행동에 참여하고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과정을 통해 자극을 받고 성장한 젊은이들이 다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 일상을 영위할 때야말로 이 행동의 영향력은 가장 크게 발휘될 것입니다.”

한번의 좋은 경험은 하나의 씨앗과도 같다. 즉, 한동안 비옥한 토양에서 기다리다가 자라나기 시작하면 한 마리 예쁜 나비가 되거나 풍성한 작물로 자라나는 씨앗처럼 개인의 경험들도 어떤 식으로든 나중의 행동에 큰 자양분이 될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이들에게도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국제 행진'은 이와 같은 씨앗을 전파하는 행동이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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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anne Sheehan and Eric Bachman

1976년 8월 1일, 18명의 활동가들이 미국 뉴햄프셔의 씨브룩 핵발전소 건설현장에 걸어 들어갔다. 이는 미국의 핵발전소에 반대하는 최초의 집단적인 비폭력 직접 행동이었다. 당시 핵발전소 반대 운동에 참여하던 많은 사람들은 이와 같은 행동이 너무 급진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이 행동에 이어서 같은 달에는 이 운동을 주도하던 클렘쉘 연합(the Clamshell Alliance)에서 비폭력 트레이닝과 동질그룹 모델을 처음으로 활용하였고 그 결과로써 180명의 사람들이 핵발전소 건설현장에서 시민불복종 행동을 전개하였다. 이 때 이루어졌던 비폭력 트레이닝 모델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고 이후 다른 많은 곳에서 사용되었다. 1977년 4월 30일에는 24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수백개의 동질그룹을 만들어서 위의 건설현장을 점거하였다. 이어진 이틀 동안 총 1415명이 연행되었고 이들 대부분은 2주 형을 선고받았다. 이 행동은 당시 핵발전소 반대 운동을 크게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동시에 이 행동은 '합의를 통한 의사결정과정'을 바탕으로 비위계적인 비폭력행동을 조직하는 하나의 국제적인 비폭력 운동 모델의 구체적 사례로 기억되고 있다.

씨브룩에서 있었던 위와 같은 행동은 사실 유럽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1970년대 초, 독일의 바일( Whyl)지역에 핵발전소가 건설될 예정이라는 소식에 독일과 프랑스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일과 접경지역인 프랑스 마르코샤임(Marckolsheim)에는 한 독일 기업이 라인강을 따라 납 공장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에 바일과 마르코샤임 양 지역의 주민들은 공동 대응을 하기로 합의하였고, 1974년 8월에는 독일 바덴 지역과 프랑스 알자스 지역에서 활동하는 환경 그룹들과 연대하여 21개 단체들로 구성된 국제위원회를 창설하였다. 그들은 양 지역 중 한 곳에서 먼저 건설이 시작되면 바로 그 곳을 비폭력의 방식으로 점거하여 건설을 가로막기로 결정하였다.

마르코샤임에서 노동자들이 납 공장 건설을 위한 울타리를 설치하기 시작한 후인 1974년 9월 20일, 이 지역의 여성들이 울타리 기둥 구멍에 올라가서 건설작업을 중단시켰다. 환경운동 활동가들은 울타리 주변을 따라 바깥쪽에 텐트를 설치했다가 나중에는 울타리 안으로 텐트를 옮겨서 그 곳을 점거하였다. 곳곳에서 이 행동에 대한 지지와 지원이 이어졌다. 독일의 한 아나코-평화주의자 매거진(Graswurzelrevolution)은 이와 같은 풀뿌리 비폭력 운동의 아이디어가 널리 퍼질 수 있도록 도왔다. 건설현장 인접 지역인 독일 프라이부르그에 소재한 한 단체는 바일과 마르코샤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인 차원의 비폭력을 소개하였다. 1974년, 마르코샤임에서 열린 3일 과정의 워크샵에서는 비폭력 트레이닝이 포함되었고, 여기엔 300여명의 사람들이 참여하여 역할놀이를 하면서 경찰이 들이닥쳤을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계획을 세웠다.

라인강을 두고 양쪽에 사는 농부, 주부, 어부, 교사, 환경주의자, 학생 등등의 많은 사람들이 건설 현장에 둥글게 생긴 목조건물을 짓고 '우정의 집'이라 이름을 붙였다. 마르코샤임에서의 점거는 그 해 겨울 내내 계속되었는데 결국 이듬해인 1975년 2월 25일에 프랑스 정부가 납 공장 건설허가를 철회함으로써 점거는 막을 내렸다.

한편, 독일 바일에서도 원자로 건설 작업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 곳 건설현장에 대한 첫번째 점거는 1975년 2월 18일에 시작되었으나 며칠 지나지 않아 곧 경찰력에 의해 중단되었다. 하지만 2월 23일에 해외 각지에서 몰려온 30,000여명의 집회가 있은 후, 두번째 점거가 다시 시작되었다. 마르코샤임에서의 성공에 힘을 얻은 환경운동 활동가들 그리고 이 지역의 가족단위 참여자들은 점거를 8개월 동안 지속하였다. 그리고 20년 넘게 지속된 법적 공방 끝에 결국 바일 지역 핵발전소 건설 계획은 백지화 되었다.

1975년 여름, 랜디 쾰러 그리고 베티 코너 이렇게 두 명의 미국 활동가들이 당시 네덜란드에서 열린 '전쟁저항자 인터내셔널(WRI)' 국제회의에 참석한 뒤에 바일 지역을 방문하였다. 그들은 '러브조이의 핵전쟁(Lovejoy's Nuclear War)'이라는 영화를 들고 갔는데, 그 영화는 미국에서 핵발전소에 저항하여 개인 차원에서 시작된 최초의 비폭력 시민불복종 행동을 다룬 영화였다. 바일 지역 방문 후 미국으로 돌아올 때에 그 두 명의 활동가들은 이 독일 조그만 동네에서 있었던 멋진 이야기들을 함께 들고 왔고, 이는 이후에 있었던 미국 씨브룩 핵발전소 반대 운동에 큰 자극제가 되었다. 양 국 그룹 사이의 소통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1976년, 씨브룩에서 점거가 벌어지고 있을 때 독일에 있던 WRI 소속 활동가들은 매일같이 전화기를 붙들고 클렘쉘 연합(the Clamshell Alliance)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독일 비폭력 활동가들은 그 이전부터 이미 '합의를 통한 의사결정' 모델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동질그룹 모델은 이 때 처음 접하게 되었다. 독일그룹은 이 동질그룹 모델이 행동을 조직하는데 아주 유용한 모델이라고 생각했다.

1977년, 독일의 활동가이자 트레이너인 에릭 바우만과 귄터 사토프가 미국으로 건너가 강연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들은 미국 북동부 지역에 있는 반(反)핵 운동 그룹들을 방문했으며, 디아블로 캐년(Diablo Canyon) 지역 핵발전소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어고 있던 캘리포니아 지역 그룹들도 방문을 하였다.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양 지역의 활동가들은 이와 같은 교류 과정을 지속하였다.

마르코샤임과 바일에서는 결과적으로 핵발전소나 납공장이 들어서지 않았다. 씨브룩의 경우에는 원래 계획되었던 원자로 두 개중 하나는 결국 건설이 되긴 했지만, 이후 미국에서는 지금까지 더 이상의 핵발전소가 건설되지 않고 있다. 독일 바일과 미국 씨브룩의 사례는 이후 반(反)핵 운동의 시금석 역할을 했으며 다른 비슷한 운동들에도 활력을 불어넣었다.

정리하자면, 유럽에서 있었던 활동들이 미국 씨브룩의 클램쉘 연합에 영향을 미쳤고, 씨브룩의 사례는 다시 미국의 다른 지역과 유럽의 운동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씨브룩에서의 성공적인 사례가 기폭제가 되어 미국의 다른 지역인 쇼어햄, 롱 아일랜드, 뉴욕에서 이미 80% 정도 건설이 완료된 상태였던 핵발전소들에 대한 반대 운동도 성공적으로 진행이 되었다. 이 지역들에서의 운동은 WRL(War Registers League)소속 동질그룹들이 씨브룩에서의 점거운동을 끝마치고 이 지역들로 옮겨오면서 본격화되었다. 한편, 1977년 씨브룩에서의 점거에 참여했던 영국 활동가들과 이 소식을 <평화 뉴스>를 통해 접한 다른 활동가들은 동질그룹을 활용하는 운동방식을 영국에서도 시도해보고자 하였다. 이들은 당시 영국 토르네스 지역에 건설될 예정이던 핵발전소 공사 현장에 가서 위의 운동방식을 활용하여 점거시위를 펼쳤다. 독일에서는 수많은 핵발전소와 핵연료 재처리 공장들이 거센 시위에 부닺혀 문을 닫았다. 그리고 1980년대 초에는 미국의 크루즈 미사일 발사 시설 설치에 반대하는 거대한 시위들이 독일과 영국에서 일어났다 이 때의 시위들은 모두 동질그룹 모델을 활용한 행동들이었다. 이후에도 동질그룹 모델이 활용된 비폭력 행동은 전세계에 걸쳐 존재해오고 있다.(1999년 씨애틀에서 있었던 WTO회의 저지 행동도 이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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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에서는 세계 곳곳에서 펼쳐졌던 비폭력 운동의 여러 가지 사례와 전략들을 살펴볼 것이다. 다른 지역의 사례들을 통해 우리는 그들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다. 더 나아가, 다른 사례들에서 볼 수 있는 창의적이고 기발한 행동들은 앞으로 우리의 행동을 준비하는 데에 많은 아이디어들을 제공해줄 것이다. 이 장에 제시된 많은 사례들은 서로 다른 지역에 있는 그룹들이 서로의 운동을 공유하며 교류하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들을 보여줄 것이다. 어떤 때에는 다른 지역의 활동가를 만남으로써 운동이 더 촉발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다른 지역 운동에 관한 자료들을 접한다거나 국제행사에 참여함으로써 운동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덧붙이자면, 이 장에 제시된 많은 사례들을 통해 국제 연대가 운동의 과정에서 갖는 중요성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장에 제시된 각 사례들의 맥락은 서로 다르겠지만 모두 비폭력이라는 가치를 공통적으로 지향하고 있다. 몇 몇 사례들은 해당 지역에서 비폭력의 가치를 공유하고 신장시키려는 활동가들의 노력을 보여준다(터키, 한국의 사례). 또 다른 글에서 제시된 국제연대활동의 사례(예.인종분리정책에 맞서 싸운 남아공)는 다른 지역에서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씨브룩과 바일, 마르코샤임의 경우와 이스라엘과 남아공의 사례에서는 국경을 가로질러 운동이 펼쳐진 모습을 볼 수 있다.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국제행진'이나 '폭탄에 때 묻히기' 캠페인, 터키에서의 5월 15일 행동들에서는 국제적 수준에서 일어나는 행동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칠레와 콜롬비아의 갈등지역에서 폭력과 인권침해에 맞서 대안을 건설하는 데에는 비폭력 운동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하나의 운동을 기획함에 있어 다른 지역의 사례들을 찾아보고 비슷한 운동이 기존에 있었는지, 그렇다면 그들의 운동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조사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동시에, 마찬가지로 우리의 운동에 대해서 문서로 기록을 남겨놓는다면 다른 그룹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장에 소개된 사례들이 각 지역의 비폭력 운동에 영감과 자극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WRI)은 전 세계 각 지역의 운동들을 잇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연대를 통해서 비폭력/반군사주의 운동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으며 'WRI'는 이 과정이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와 정의를 실현하는 중요한 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International solidarity campaign with South Africa Seabrook - Wyhl - Marckolsheim - transnational links in a chain of campaigns International Antimilitarist marches Chile: Gandhi's Insights Gave People Courage to Defy Chile's Dictatorship Israel - New Profile learns from the experience of others Turkey- Building a nonviolent culture South Korea - Challenges and successes of working in nonviolence Peace Community of San José de Apartadó,Colombia : A lesson of resistance, dignity and courage Bombspotting - towards an European Campaign 15th of May - International Day of Conscientious Obj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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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요르겐 요한센, 브라이언 마틴

우리는 어떻게 저항의 행동들을 더 효과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이 분야에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다양한 선택지들을 가지고 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누구를 향할 것인지에 대한 경험들 말이다. 비폭력 행동을 접하게 될 사람들이 어떤 반응들을 보일지를 살펴보면서 우리는 유용한 팁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 관료가 우리 지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에 맞춰 항의 시위를 조직해보자! 큰 집회와 행진을 해보고자 한다. 원하는 사람들은 정부 관료가 방문할 지역을 차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널리 알려진 불평등과 개발사업, 시민들에 대한 억압과 같은 문제들에 대해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잠깐. 이와 같은 항의가 과연 기대했던 결과를 가져오는 데 '효과적'일 수 있을까? 우리의 시위가 과연 사람들의 관점을 바꿔내고 지지를 이끌어내며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반대로, 도리어 우리의 시위가 사람들의 편견을 강화하고 잠재적인 지지자들을 떨어뜨리며 결과적으로 앞으로 있을 더 많은 운동들의 에너지들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여기서 언급한 '효과적인 항의'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와 같은 질문들에 대한 답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우리의 행동들은 예상치 못한 많은 결과들을 낳는다. 그리고 그 결과들은 어떤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는가 하면 어떤 것들은 쉽게 짐작할 수 없기도 하다. 우리가 계획하는 행동이 가져올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효과를 예측하고 판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들은 이성적 차원 뿐만 아니라 감정적인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맥락

행동들은 항상 적절한 상황과 맥락 속에서 계획되어야 한다. 어느 한 상황에서 적절했던 행동이 다른 곳에서는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것이다. 법, 미디어, 경찰, 문화, 종교, 시민사회 그리고 다른 많은 요소들은 부르키나 파소에서부터 독일, 네팔, 인도네시아, 중국에 이르기까지 각각이 처한 상황에 따라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1930년, 간디는 인도에서 영국의 소금법에 반대하여 인도인에게 강력한 상징물인 소금을 활용한 비폭력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스와질랜드나 스웨덴에서는 어떤 효과적인 상징물이 시위에 활용될 수 있을까? 비폭력 행동은 지역의 상황과 맥락에 대한 깊은 이해를 기반으로 계획되어야만 한다. 비폭력 행동에 있어 일반적인 원칙 중 하나는, 성공적인 사례들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다른 지역의 활동가들은 그 성공적인 사례들을 통해서 영감을 받고 배울만한 무엇인가를 건질 수가 있다는 점이다.

무기한 단식 투쟁은 기독교 문화와 힌두교 문화 사이에서 매우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무신론자나 크리스천에게는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것이 매우 큰 의미를 갖지만, 힌두 문화에서는 한 명이 아니라 더 많은 생명들이 함께 하기를 기대한다. 한편, 활동가들이 고문과 장기 투옥 혹은 사형과 같은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지역에서와 단지 벌금이나 몇 주의 짧은 형이 일반적인 지역에서의 시민불복종 행위의 의미는 무척 다르다. 권력에 대한 비판이 자유롭기 때문에 사람들의 데모가 정기적으로 다뤄지는 곳과 다르게 엄격한 검열과 국가에 의해 운영되는 언론만이 존재하는 곳에 있는 활동가들에게는 좀 더 많은 고민과 다른 행동이 요구된다.

선택

비폭력 행동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반대(oppose)'를 위한 행동이고 다른 하나는 '촉진(promote)'을 위한 행동이다. '반대'를 위한 행동에서는 참여자들이 무엇에 동의하지 못하는 지에 초점을 맞춘다반면, '촉진'을 위한 행동에서는 참여자들이 어떠한 대안을 보여줄 것인지에 초점을 맞춘다. 이 두가지 다른 행동들 안에는 수많은 선택지들이 존재한다. 많은 경우, 한가지 대안에 대한 계획이 가능하다면 그것을 이미지화 해내는 작업은 무척이나 용이해진다. '반대'를 외치는 것은 쉽고 흔한 행동이지만 종종 도움이 안 되거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는 것으로 여겨질 때가 많다. 대안을 보여주는 것은 '반대'를 외치는 것보다 더 많은 노력이 요구되긴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이미지로 비추어진다. .

위와 같은 비폭력 행동의 두 가지 구분 안에는 또 다른 선택항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 직접 행동을 택할 것인지 간접 행동을 택할 것인지의 문제이다. 직접 행동은 활동가들 스스로가 어떤 문제나 갈등에 대하여 직접적인 행동을 펼치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시내의 한 거리를 가로막고 보행자를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든가 한 건물을 점거하고 그 공간을 문화센터로 만드는 것과 같은 행동은 직접 행동에 속한다. 예전에 영국에서 “Genetix Snowball”(http://www.fraw.org.uk/gs/) 소속 활동가들이 유전자 조작 작물들이 있는 농장을 파괴했을 때, 그들은 그 공간이 불법이라고 주장하는 동시에 그 곳에 있던 작물들도 모두 제거를 하였다. 이러한 행동은 보통 불법행위이고 위험한 행동이다. 여기서 포인트는 활동가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변화를 '직접'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한편, 간접적인 행동들에는 정치인이나 기업 간부들에게 지금 벌어지고 있는 부당한 상황에 관심을 가지거나 시정해줄 것을 요구하는 행동들이 포함된다. 물론, 이렇게 누군가에게 청원을 하는 것도 독재정권 하에서는 하나의 직접행동일 수가 있는데 왜냐하면 이는 곧 표현의 자유를 실천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직접 행동이든 간접 행동이든 더욱 다양한 활동들을 계발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창의력, 상상력 그리고 실험정신은 매우 중요하다. 마치 무기 개발자들이 해마다 더 세련된 무기들을 들고 나오듯이 활동가들도 새롭고 기발한 활동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고민해야한다. 그리고 성공적인 비폭력 행동의 사례들은 연습을 거치고 문서로도 남기는 과정을 통해 이후 다른 곳, 다른 맥락에서도 활용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일반 대중

많은 갈등의 경우 우리는 사람들을 다음처럼 세 가지 큰 범주의 그룹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특정 사안과 직접 관련하여 운동을 하는 '활동가'와 활동가들이 맞서 싸우는 '상대 집단' 그리고 이 사안과 직접 관련이 없는 '제 3자 집단'. 예를 들어, 한 그룹이 정부에 맞서 운동을 벌이고자 할때, '활동가' 집단은 곧 특정 활동에 개입하고 있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 때의 '상대 집단'은 정부나 혹은 정부를 대리하는 집단(용역)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 3자 집단'은 특정한 사안과 관련한 운동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은 일반 대중이나 다른 나라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대중들은 특정한 운동의 결과로 제3자의 위치에서 운동의 당사자로 변모하거나 혹은 거꾸로 운동의 당사자에서 한 발짝 물러서 제3자의 위치로 빠질 수도 있다. 여기서 제기되는 한 가지 중요한 화두는 바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특정한 운동에 함꼐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미디어가 바로 특정한 운동이나 행사에서 표출된 정보나 주장들을 다른 일반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집단들 사이의 역학 분석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논의은 쪽 '지지집단 분석'(Spectrum of Allies')을 참조, 미디어와 관련한 논의는 쪽 '미디어의 역할'을 참조)

활동의 방식과 대중의 반응 사이의 상관관계

어느 특정한 집단이 행동에 관심이 있을 것인지 분석하는 것과 동시에 활동가들이 취하는 행동의 방식과 그것을 지켜보는 대중들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고민해보는 것은 매우 유용하다. 미디어 전문가인 마셜 맥루한은 '미디어는 메세지다'라고 말한 바 있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은 거기에 무엇이 보여지고 있느냐와는 관계없이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특정한 관점에 익숙해지도록 만든다. 한편, 사적인 대화는 그와는 또 다른 관점을 자극할 것이다.

활동에 있어서도 '미디어', 즉 특정한 하나의 활동방식 자체는 곧 '메시지'를 낳는다. '반응추론이론'이라 불리는 심리학의 한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행동의 의도를 파악할 때 그 행동의 결과를 보고 추론을 한다. 예를 들어, 활동가들이 폭탄 설치나 암살, 비행기 납치처럼 위협적인 행동을 벌인다면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그 활동가들의 목표가 사회를 파괴하는 것이었을 것이라고 재단을 하게 된다. 여기서의 활동방식, 즉 파괴적 활동방식은 그 활동의 목표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9/11이 벌어졌을 때, 많은 미국은 들은 알 카에다의 목표가 미국 사회를 붕괴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잘못 전달된 메세지이다. 오사마 빈 라덴이 세계무역빌딩에 비행기를 들이대며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세지는 바로 미국 정부가 벌어던 중동 지역 정책에 대한 문제제기 였지만 정작 이 메세지를 제대로 알아들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와 같은 논리는 다른 작은 활동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만약 피켓 시위를 벌어고 있는 노동자 한 명이 사장에게 침을 뱉는다면 그걸 본 사람들은 보수가 적다거나 작업환경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메세지를 발견하기보다는 다만 무례한 노동자라는 메세지를 얻게 될 것이다.

활동방식이나 수단이 활동의 목표와 충돌하지 않고 조화를 이룰 때 그 활동의 영향력은 훨씬 더 증대된다. 미국의 시민권 운동의 사례중에 잘 차려입은 흑인들이 백인전용 식당에 방문하여 공손하고 조용하게 앉아 있었던 적이 있다. 그들을 향해 쏟아지는 백인들의 시비와 경찰의 위협에 대해 그 흑인들은 반응하지 않고 침착을 유지하며 앉아 있었다. 이와 같은 그들의 우아하고 공손한 태도는 그들의 단기적인 목적(동등하게 식당을 이용할 권리)과도 부합했을 뿐만 아니라 인종 평등이라는 그들의 장기적인 목적을 아주 효과적으로 드러내 주었다. 이에 반해 그 자리에 있던 백인 손님들과 경찰들이 보여준 공격적인 태도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 식당의 인종차별이 시스템에 내재한 인종주의와 배제성 그리고 공격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꼴이 되었다. 이 때 이 흑인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통해 전달한 강력한 메세지는 미국 전역과 전세계에 걸쳐 인종차별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

공격에 맞서는 요령

시위 참여자들은 종종 자신들을 향해 가해지는 공격에 맞닥뜨리게 된다. 모욕이나 괴롭힘, 구타를 당할 수도 있고, 체포나 구금 심지어 목숨의 위협을 받기도 할 것이다. 혹은 시위대 안의 논의내용이 노출되거나 사무실이 침탈받는 경우, 그리고 시위대에 속한 사물, 기기들이 몰수 또는 파괴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공격들은 매우 치명적이어서 참여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거나 심지어 참여 자체를 포기하게 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잘 준비를 하고 행운까지 따른다면, 상대 집단의 그와 같은 공격을 오히려 그들을 무너뜨리는 무기로 바꿔낼 수도 있다. 물론 이는 말처럼 쉽지 않고 또 자주 일어나는 것도 아니지만, 큰 영향력을 파생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시위대에 공격을 가했던 사람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세력들은 이 공격으로부터 표출될 분노를 차단하기 위해 보통 다음과 같은 다섯가지의 조치를 취한다.

자신들이 수행한 공격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철저히 가린다. 자신들이 공격한 집단을 비하한다. 허위 진술, 사건 축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자신들이 저지른 행동을 재해석한다. 문제의 해결과정에서는 사법질서와 같은 공식적 루트를 이용한다. 시위대를 협박하거나 매수한다.

예를 들어, 시위대에 대한 경찰의 진압공격이 발생했을 때 경찰집단과 그 지지세력들은 위에 열거된 다섯 가지 방법 모두를 사용할 것이다.

경찰은 보통 목격자나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 시위대를 공격한다. 경찰과 정치인, 논평가들은 시위대가 원칙없고, 욕설을 일삼고, 불량스러운, 대중을 동원한 전문시위꾼이며 폭력배, 범죄자, 테러리스트 등으로 몰아세운다. 그들은 경찰들이 단지 시위대가 폭력을 행사하고 시민들의 평화를 위협하기에 경찰 본연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한 것일 뿐이며, 폭력을 당한 것은 시위대가 아니라 오히려 경찰 자신이라고 주장을 한다. 시위대가 공식적으로 항의를 하거나 사법절차를 밟을 경우에 경찰의 폭력성에 책임을 묻는 결과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와 같은 과정이 길게 지속되면서 많은 사람들은 이 사건에 대한 관심을 잃어가고, 활동가들은 재판과정에 치여서 동안 원래의 활동과는 멀어지게 된다. 많은 경우 시위에 참여 하는 사람들은 경찰의 보복이 두려워 침묵을 지키거나, 재판과정에서는 경찰이 앞으로 침묵을 지키는 것을 조건으로 제시하는 합의안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위의 다섯 가지 경우들은 모두 충분히 잘 대처할 수 있다.(심리적인 부분을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좀 더 많은 논의는 ....쪽에 있는 '정치적인 목소리를 낼 때 유발되는 긴장과 스트레스를 대하는 법'을 참조)

결론

언제, 어떻게, 무엇에 대해 항의를 할 것인지를 결정할 때에는 이를 지켜볼 대중과 그들에게 전달될 메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아야 한다.

맥락 활동을 계획할 때에는 그에 맞는 맥락을 고려해야만 한다. 다른 곳에서는 효과가 좋았는 활동이 이 곳에서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선택 활동에는 '반대'를 목적으로 하는 것과 '촉진'을 목적으로 하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전자가 무엇에 반대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춘다면, 후자는 대안에 초점을 맞춘다.

일반 대중 활동의 방식과 이를 지켜보는 제3자집단은 어떻게 서로 반응하는가? 상대 집단, 제3자 집단, 활동가 지신들 모두가 중요한 고려요소이다.

'''조화 ''' 활동의 방식과 수단은 활동의 목표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가? 활동의 방식이 활동의 목표와 조화를 이루면 이룰 수록 활동의 메세지는 전달이 더 잘 될 것이다.

공격 상대 집단에 의한 공격에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상대 집단의 사실 은폐 및 축소, 폄하와 협박, 매수 그리고 공식 사법절차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잘 준비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덧붙이는 말: 문서화, 평가 그리고 전파 우리의 활동들이 좀 더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활동가들이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필요가 있다. 비폭력 행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준비과정에서부터 자신들이 무얼 하고 있는지를 기록으로 남기고 평가를 남겨서 이 정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접근이 가능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쪽 '활동 평가' 참조) 마치 군 사관학교의 학생들이 역사적인 전쟁들에 대해서 강의를 듣고 교과서로 공부를 하듯이 활동가들도 다음 세대들이 예전의 사회 운동에 대한 학습을 통해 경험과 교훈들을 얻을 수 있는 체계적인 틀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이런 학습 시스템을 위해서는 하나의 활동이 있을 때마다 계획에서부터 실행, 결과에 이르기까지 진지하고 비판적인 평가들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평가들은 다른 언어와 배경에 대한 고려하에 다른 활동가들과 공유될 수 있어야만 한다. 물론 이 작업에는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비폭력 행동들 역시 무한하다!

이 글은 29권 4호(2008년 1-3월호, 503쪽-519쪽)에 실렸던 원고의 축약본입니다. 원문은 다음 웹사이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uow.edu.au/arts/sts/bmartin/pubs/08gm.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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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운동조직이 어떻게 성별의식(gender awareness)을 평화운동 속에 포함시킬 것인가? 이것은 그들의 조직적 정체성 및 구조, 트레이닝 및 멤버들의 성향, 그리고 프로그램 전략의 개발을 통해 가능할 수 있다.

이스라엘 평화운동단체인 뉴프로파일(New Profile)은 스스로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군인들의 나라에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페미니스트 여성 및 남성들의 그룹이다.' 뉴프로파일은 그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누구라도 쉽게 인지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젠더와 평화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매우 명확하게 연관짓고 있다. 또한 단체장의 역할 및 모든 유급 활동을 돌아가면서 맡고 활동가들 사이의 위계를 피하는 것을 통해 전통적인 조직의 패턴을 무너뜨렸다. 뉴프로파일은 새로운 멤버 및 일반 대중을 상대로 많은 트레이닝과 교육 프로그램들(워크샵, 세미나, 청년 그룹들 및 컨퍼런스)을 진행하는데 이러한 프로그램들에는 어떻게 젠더와 군사주의가 이스라엘 문화 및 사회에 연관되어 있는지에 대한 분석이 늘 포함된다. 단체는 또한 하루공부모임을 개최하는데 이것은 이 주제를 보다 깊이 있게 분석하기 위함이다. 예를 들어 2007년에 진행되었던 한 하루공부모임에서는 군자료실에서 가져온 여성 군인의 사진을 이용하여 이스라엘의 여성징병 및 사회 전반의 일반적인 군사화에 대해 살펴보기도 하였다. 이러한 공부모임 및 토론 기회를 통해 뉴프로파일 활동가들은 문제분석 및 활동 전략에 보다 깊은 성별의식을 포함시킬 수 있었다. 뉴프로파일의 소형, 경량 무기 프로젝트(Small Arms and Light Weapons project)는 단순히 이스라엘 무기거래의 문제점 및 구조만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러한 소형무기들이 개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어떻게 이러한 이스라엘의 문화에서 뉴프로파일이 어떻게 '안전(security)'이라는 개념을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연구한다.

뉴프로파일에 대한 보다 많은 정보는 이스라엘 - 뉴프로파일, 다른 이들의 경험으로부터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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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와 비폭력행동

남성들이 싸우기를 거부했을 때, 그리고 여성들이 찬성하기를 거부했을 때 전쟁은 중단될 것이다. 제시 월러스 휴건(Jesse Wallace Hugan), 전쟁저항자연맹(War Resisters League) 설립자

소개

우리가 남녀 모두 전쟁과 부정의에 저항하는 투쟁에 함께 하길 원한다는 것은 얼핏 간단명료한 듯 보인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사람들의 재능, 에너지 및 통찰력을 최대한 활용하길 원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 스스로를 조직할 것인지 어떻게 우리 캠페인을 만들어나갈 것인지 어떻게 비폭력행동을 위한 트레이닝을 할 것인지에 성별의식(Gender awareness)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왜냐면 젠더, 즉 우리 사회가 정의해 놓은 남성 및 여성의 역할, 남성성 및 여성성이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지배적, 공격적, 통제하는 성향의 남성성과 약하고 순종적이며 통제받는 성향의 여성성이라는 전통적 사회적 인식이 우리 모두에게 깊이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성별의식은 비폭력행동 및 캠페인에서 우리가 중단시키려는 똑같은 부정의를 영속시키지 않도록 도와준다.

반군사주의 캠페인들에서 성별의식 및 젠더에 기초한 분석은 효과적인 전술을 만들어내는 데에도 역시 소중한 수단이 된다. 젠더는 모든 분쟁의 한 요소이다. 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닐 수는 있으나 남성성, 여성성의 서로 다른 생각들이 왜, 어떻게 사람들이 싸우는 가의 중심에 있다. 군대시스템은 남성 및 여성의 역할에 관한 특정한 사고 및 가정에 근거하여 작동하도록 만들어진다. 만약 우리가 분쟁을 해결할 비폭력적 구조 및 시스템을 만들길 원한다면 우리는 젠더에 관한 새로운 가정 및 요구를 창출해내야 할 것이다.

이 장에서 우리는 비폭력트레이닝에 성별의식을 포함하고 젠더 관점으로 캠페인 및 비폭력행동을 평가할 수 있도록 관련 개념 및 연습활동들을 포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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