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현황과 인권 - 제60차 유엔인권위원회 공동보고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전쟁저항자 인터내셔널 (War Resisters' International) :
한국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현황과 인권
- 제60차 유엔인권위원회 공동보고서
차 례
- 1. 요 약
- 2. 한국의 병역제도
- 3.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 4. 부록
1. 요 약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는 한국에서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전혀 인정되지 않고 있으며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어떠한 제도적 장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2004년 2월 현재 521명의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수감되어 있으며, 매년 약 700여 명의 병역거부자들이 처벌되고 있다. 한국의 병역거부자들은 대부분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며 제칠안식일예수재림교 신도 등도 소수 존재한다. 병역거부자들은 예외 없이 1년6개월에서 2년의 징역형에 처해진다. 일반 재소자들과 달리 이들은 가석방 심사 기준에 있어서도 보다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고 있으며 처벌 이후에도 공무담임권 박탈, 취업 제한 등의 사회적 불이익을 평생토록 겪게 된다.
남북한의 군사 대치 상황 속에서 반공주의와 국가안보는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핵심적인 이념으로 작용해 왔다. 30여 년간의 군사독재정권 기간을 거치면서 개인의 인권과 양심의 자유 또한 국가안보라는 미명하에 얼마든지 제한될 수 있었으며 이에 저항할 경우 혹독한 처벌로 목숨까지 잃을 수 있었다. 특히 병역의 의무를 거부한다는 것은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군사정권이 종식된 1990년대 이후 한국사회는 여러 분야에 걸쳐 민주화가 진전되고 인권의식도 상당히 성장했지만 국가안보 우선주의와 이에 따른 절대적인 병역의무는 여전히 인권이나 인간안보보다 우선시 되고 있다.
지난 50여 년간 만여 명의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병역을 거부해 왔으며, 현재 세계에서 단일 사안으로는 가장 많은 병역거부 수감자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도 이들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 국제인권규약 가입국으로서 유엔의 인권 관계 결의를 존중할 의무와 함께 정기적으로 국내의 인권 상황을 유엔에 보고할 의무가 있음에도 지금까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관련된 한국의 실상을 유엔에 보고하지 않았다. 국방부는 특수한 안보환경과 병역제도의 형평성만을 강조하면서 대체복무제도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는 한국의 보수 기독교 교단 역시 대체복무제도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역거부자들은 매년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반전 평화주의 신념에 따른 비종교적 거부자들의 병역거부 선언이 이어지면서, 이제 병역거부문제는 인권 문제를 넘어 비폭력적 평화운동으로서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다.
2. 한국의 병역제도
2.1 병역제도 일반
한국은 국민개병제에 입각한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다. 병역은 개인의 신체적 조건, 학력, 자질 등에 따라 현역과 보충역으로 구분되며 현역 복무를 마친 자는 의무적으로 예비역에 편성된다. 현역은 5주의 기본군사훈련을 포함하여 24~28개월[1]을 복무하며, 보충역은 병역법이 정하는 신체, 학력, 가사사정상 현역 부적합자, 혹은 특수한 기능이나 자격 보유자들로서 4주의 기본 군사훈련을 받은 후 28~32개월 간 대체복무를 수행한다. 예비역은 사병의 경우 제대 후 8년간 약 160시간의 군사훈련을 받아야 한다. 병역의 면제는 병역법이 정하는 신체 결함, 학력 미달이나 가사 사정에 국한되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 대한 면제 조항이나 이들을 위한 대체복무 규정은 없다.
현역병은 한국의 전체 인구 4,800만 명 중 약 69만 명에 해당되며, 보충역은 대략 14만 명에 이른다.[2] 병무청의 통계에 따르면 2001년 상반기 징병 검사자 중 2.6%인 4,916명이 신체 결함, 학력 미달 등으로 징집이 면제되었다. 대체복무를 수행하는 보충역은 특수한 자격이나 기능을 보유하고 있는 자에 한에 전문연구요원이나 산업기능요원 등으로 지원할 수 있으며, 나머지는 병역법에서 정하는 신체결함이나 학력미달 기준에 따라 전적으로 병무청의 판정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병무청 심사 결과 현역병 대상자로 판정되면 특수한 자격이나 기능이 없는 한 보충역으로서의 대체복무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또한 보충역 역시 4주간의 기본군사훈련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병역거부자들의 경우 보충역 판정을 받았거나 보충역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다 하여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병역법에는 병역의무 불이행에 대한 처벌 조항[3]만 존재할 뿐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어떠한 대체규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2.2 사회적 인식
한국사회에서 군대와 국방의 문제는 매우 복잡한 역사와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군대와 국방은 곧 생존과 직결되는 절대적인 개념으로 여겨져 왔으며 역대 정권은 권력유지를 위해 이러한 상황을 잘 이용했고 또 부추겨왔다. 30여 년의 군부 독재 시기를 거치며 군대는 범접할 수 없는 성역이 되었고 민간의 감시로부터 멀어졌다. 따라서 군대 내 인권문제는 심각했고 온갖 부정․부패가 성행했다. 사회가 발전하고 많은 부분에서 민주화가 이루어졌지만 아직까지 군대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그 변화 속도가 가장 느린 곳이다. 극소수 특권층에서 권력이나 재력을 이용해 자식들의 병역을 면제받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처럼 여겨지고 있다. 일반인들 사이에서 빈민개병제라는 유행어가 있을 정도로 군대는 돈 없고 권력이 없는 사람들이 끌려가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또한 커다란 사회적 공분과 박탈감을 낳게 하였다. 실제로 지난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는 후보자 자식의 병역기피 의혹이 선거의 당락을 결정지었을 정도로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군대를 둘러싼 이러한 평등권의 문제는 잘못된 군 제도를 바로잡기 위한 여론으로 발전하기보다는 병역거부자들을 특권층과 같은 부류로 인식하도록 만들어 병역거부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논의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또한 50여 년간 아무런 도전도 받지 않고 지속되어 온 징병제 하에서의 군대 체험은 많은 일반인들로 하여금 군대 내에서 어느 정도의 인권침해는 불가피하다는 인식마저 갖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의 근저에는 오랜 분단과 징병제, 군부독재의 경험에 의한 전 사회의 군사화가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주한미군 철수, 재배치 문제가 논란이 되면서 한국군의 힘으로 한반도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국방비의 증액과 군대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3.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한국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전혀 허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징병제도가 실시된 이후 지난 50여 년간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처벌은 특수한 안보 상황 등을 이유로 최근까지 단 한차례의 도전도 받지 않았다. 병역거부자들은 법적인 처벌 이외에도 혹독한 사회적 차별을 감수하고 살아야 한다. 이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매년 꾸준히 나타났으며 지금은 한국의 주요한 사회적 문제 중 하나가 되었다.
3.1 현 황
2004년 2월 현재 521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전국 교도소에 복역중이다.[4] 한국의 병역거부자는 일제 식민지 시절이던 1939년 최초의 처벌 기록이 보고 된 이래 지금까지 처벌된 숫자가 1만 여명에 달한다. 최근의 추세를 보더라도 2000년 683명, 2001년 804명, 2002년 734명, 2003년 약 705명 등 매년 약 700명 이상의 병역거부자들이 총을 드는 대신 감옥을 선택하고 있다.
한국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는 대부분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며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신도 등도 소수 존재한다. 남북한의 분단 상황은 병역 의무를 신성시 하는 관행을 존속시켜왔으며, 군대 내 문제에 대해 외부에서 함부로 문제제기를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군대와 관련된 인권문제는 최근까지도 국민들 관심 밖의 영역이었고, 종교적 이유 등으로 군복무를 거부하는 국내외 사례들이 일반인들에게는 거의 소개되지 못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병역거부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병역거부에 따른 법적 처벌뿐만 아니라 이단교도 혹은 정상적인 국민이 아니라는 사회적 차별을 이중으로 받으며 살아왔다. 한 번 병역을 거부한 자는 평생 병역기피자로서의 전과자 낙인을 달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공무원 임용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든지, 민간 기업에 취업하고자 할 때 신원조회에서 탈락하는 등의 사회적 차별을 경험하게 된다. 한국의 병역법에서는 법적으로 인정된 사유 외의 이유로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자에 대해서는 공무원이나 관청 허가업종 등에 종사하는데 있어 제한을 두고 있다. [5]
법적 처벌 역시 상당히 자의적인 경우가 허다했다. 물론 대다수의 시민들은 이들의 존재 자체도 알지 못했다.
여호와의 증인 병역거부 사례:
• 고재선 씨는 산업기능요원으로 경기 오산시 소재 대광다이캐스팅㈜에서 2000년 10월부터 2002년 5월까지 근무했다. 2002년 5월 6일자 3주 기초 군사 훈련 소집에 불응하여 2002년 10월 31일 현역병으로 징집되었다. 이를 불응하여 재판을 받았으나 담당판사는 피고인의 종교적 신념이 바뀔 수 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 결정을 내렸고, 1년 6개월 미만의 실형을 선고 받았기에 재징집 대상이 되었다. 이를 막고자 검사에게 항소해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거절되었다. 결국 2003년 11월 현역병으로 재징집 되었고 이에 다시 불응하여 구속되었다. 판사의 직권보석으로 석방되었으나, 심리는 계류 중이다.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는 2001년 초, 한 주간지의 보도를 통해 놀랍도록 많은 수의 병역거부자들이 그 동안 처벌을 받아왔고 현재도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특히 2001년 말, 26세의 불교신자이자 평화운동가인 오태양의 병역거부 선언은 병역거부가 특정 종교인들의 비상식적인 행동이라는 사회적 선입견을 불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2002년 2월에는 3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가 발족하여 병역거부자들의 인권보호를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오태양의 병역거부 선언 이후 또 다른 불교 신자를 비롯해 개인적 혹은 정치적 동기에 따른 비종교적 이유의 병역거부자들이 공개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현재까지 총 11명에 이르고 있다(표3-2. 참조).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가 한국 사회의 주요한 이슈로 부각되면서 2002년 9월에는 아직 징집되지 않은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미리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소위 ‘예비 병역거부 운동’이 진행되기도 하였다. [6]3.2 처벌
한국의 병역법상 병역거부자에 대한 병역 면제 또는 대체복무 조항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병역거부자들은 예외 없이 군형법 제44조의 항명죄 또는 병역법 제88조의 입영 기피죄가 적용되어 3년 이하의 징역형 처벌을 받는다. 군 제대 후 예비군에 편성된 상태에서 소집훈련에 불응하여 병역을 거부하는 경우에도 향토예비군설치법 제15조 4항에 의거해 50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3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게 된다.
2001년 중반 이전 까지는 거의 대부분의 병역거부자들이 강제로 군에 입대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모든 병역거부자들은 군 복무 기간 중 항명죄로 법정 최고형인 2년 혹은 3년[7] 의 처벌을 기계적으로 선고 받았다. 2001년 중반 이후 병무청에 의한 강제 입영 관행이 사라지면서 현재 대부분의 병역거부자들은 군 입대 자체를 거부하여 병역법에 의해 처벌되고 있다. 이들은 민간법정에서 1년 6개월에서 2년의 실형을 선고 받고 있다. 병역법상 1년6개월 이상의 실형을 선고 받을 경우 병역이 면죄되기 때문에[8] 한번 처벌 받은 병역거부자들은 재차 징집되지 않는다. 현재 대부분의 민간법정에서는 병역거부자에 대해 군대에 재 징집되지 않을 최소 형량인 1년6개월 형을 언도하고 있는 추세이다.
예비군 병역거부자의 경우 한 차례의 처벌 이후에도 예비군 배속 기간 동안 반복해서 훈련 소집을 요구받고 있어, 동일한 사안으로 반복 처벌되는 문제가 심각하며 벌금형의 누적 수준은 생계를 위협할 정도로 많은 액수이다. 최근에는 한 예비군 병역거부자가 2차례에 걸쳐 각각 10개월과 8개월의 형을 살기도 하였다. 이 예비군 병역거부자의 경우에는 결과적으로 병역이 면죄되는 1년 6개월의 형을 치른 셈이지만 개별 형량이 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예비군 훈련 소집은 계속 부과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예비군 병역거부자 사례:
• 최홍기 씨는 1999년 제대 후 여호와의 증인이 되어 예비군으로서의 군사훈련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약식 재판에 의해 350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졌고, 다섯 건의 고발 건이 처리 중이며, 한 건의 재판에서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를 받은 상태이다. 무거운 벌금형과 잦은 재판으로 인해 정상적인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지경에 누적된 실형까지 살아야 할 위기에 처해 있다.
현재 행해지고 있는 처벌과 관련하여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가해지는 인권침해 실태를 분류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의 헌법은 유죄의 확정판결을 받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규정하고 있고,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지 아니한 피의자는 구속되지 않은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 것이 형사소송법의 일반 원칙인데, 병역거부자들은 대개 수사 개시 때부터 구속되어 왔다. 2002년 병역거부자들의 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시민단체들의 활동이 본격화 된 이후 불구속 수사 사례가 증가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다시 대부분의 병역거부자들이 구속 수감되어 조사 받고 있다.
둘째, 일반 재소자들과 달리 ‘여호와의 증인’인 병역거부자들은 가석방 심사 기준에서 특별한 유형으로 분류되어 심사되고 있다.[9] 이들은 교도소 내에서 대표적인 1급 모범수로 평가받고 있음에도, 통상의 경우 50% 이상 형기를 복역하면 가석방의 혜택이 주어지는데 반하여, 반드시 형기의 75% 이상 복역해야 가석방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매년 몇 차례씩 정부가 전체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면·복권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고 있다.
감옥 내 수감 실태와 관련하여 2003년 중반 이전까지는 여호와의 증인 수감자들에 대해 “특유한 종교교리를 이유로 병역의무를 기피하는 등 실정법을 위반하고, 이로 인하여 형 집행중인 상태에 있으므로 이들의 잘못된 신념을 굳건히 할 수 있는 종교 집회 허용은 교정, 교화의 목적과 배치된다”[10]는 등의 이유로 이들의 감옥 내 종교집회가 허용되지 않았다. 2003년 중반에 이르러서야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받은 법무부가 수감 중인 여호와의 증인 병역거부자들을 비롯해 소수 종교 신봉 수용자들의 종교 집회를 허용함으로서 현재 이러한 차별은 시정되었다. [11]
3.3 법적 동향
한국에서 1987년 개정된 헌법에 따라 헌법재판소 제도가 마련되기 전에는 대법원이 법률의 위헌여부를 심사하는 최고기관이었다. 병역거부자들은 1969년, 1985년, 1992년에 각각 대법원에 상고하여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종교와 양심의 자유에서 비롯된 행위이므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병역의무 위반이 아니라는 점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종교의 교리를 내세워 법률이 규정한 병역의무를 거부하는 것과 같은 이른바 양심상의 결정은 헌법에서 보장한 종교와 양심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12]라고 일관되게 부인하였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법원들은 예외 없이 병역거부자들에 대하여 유죄의 판결을 선고해 왔다.
하지만 지난 2002년 1월 29일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에서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병역거부를 하여 재판을 받고 있던 이경수씨가 대체복무제도를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현재의 병역법 제88조는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종교와 양심의 자유 등을 침해하고 있다는 이유로 위헌여부 심판제청을 하였는데,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 위헌여부심판제청을 하였다. 이 결정 이후 사법부에서는 병역거부자에 대한 선고를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후로 미루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이에 따라 많은 병역거부자들이 보석으로 석방된 상태에서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법원에 의해 재징집을 피할 수 있는 최소 형량 선고나 보석 결정이 증가하면서 2000년 말 현재 1,640명이었던 병역거부 수감자 숫자는 2004년 2월 현재 521명으로 감소하였다.[13]
2001년 초에는 몇몇 국회의원들이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도 입법을 추진하기도 하였으나 여호와의 증인을 이단시 하는 보수 기독교계의 강력한 반발로 무산된 이후 아직 별 다른 진전이 없는 상태이다. 2002년 4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는 보다 실질적인 대안 마련을 위해 변호사, 법학 교수, 인권 활동가 등이 참여한 가운데 대체복무제도 입법안을 만들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입법추진 서명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는 여전히 이에 대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3.4 사회적 동향
2001년 여호와의 증인 병역거부자들의 오랜 병역거부 사례가 일반에 알려지고 불교신자이자 평화운동가인 오태양 씨의 병역거부가 이어지면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은 급속하게 확산되었다. 지난 50여 년 간 만여 명의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병역을 거부해 왔으며 현재에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병역거부 수감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동안 안보문제에 가려져 외면당했던 인권의 가치에 대해 새롭게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었다. 언론, 학계, 법조계, 종교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병역거부와 대체복무 도입에 관한 각종 토론이 진행되었으며, 2002년 2월에는 학계, 정치계, 법조계, 언론계, 시민·사회단체 등의 저명 인사들을 포함하여 1,552명이 서명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인정 및 대체복무제 도입을 촉구하는 1000인 선언”이 발표되기도 하였다.
현재 36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에서는 2002년 초 발족 이후 현재까지 병역거부자 상담 및 법률 지원, 각종 토론회 주최, 대체복무제도 입법 추진 등 병역거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확산을 위한 각종 노력들을 벌이고 있다. 2002년 4월에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연대회의 대표단이 유엔인권위원회에 참석하여 한국의 병역거부 문제를 보고하였으며, 2003년 3월에는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과 대만 병무청 등에서 참석한 병역거부 국제회의를 미국친우봉사회와 함께 서울에서 개최하기도 하였다.이 같은 상황 속에서 대체복무제도 도입에 대해 특정 종교에 대한 특혜, 남북 분단 상황에 따른 안보 위협, 군복무에 대한 형평성 등을 이유로 반대하던 여론들도 현실적인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인식의 변화를 조금씩 보이고 있다. 병역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 이후 병역거부자에 대한 보석 결정 증가나 1년6개월의 최소 형량 구형 등 사법부에서 보여주고 있는 전향적인 태도 역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진전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입법부에서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가 사회적으로 불거진 이후 아직까지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정부와 국방부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반대하기 위한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02년 10월에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병역의무의 기피는 우리의 현실에서 어떤 이유로든 용납될 수 없고,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이후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구속수사 방침이 보다 강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2003년 3월에는 교육부가 각 대학에 병역거부 확산을 막으라는 공문을 하달하여 물의를 빚기도 했다. 국방부 역시 2001년 10월에 발표한 “병역거부자 대체복무에 대한 국방부 입장”[14] 이후 여전히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또한 현역 군인들을 대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절대 허용하면 안 된다는 내용의 교육을 시키기도 하였다.
국회에서도 병역거부 문제는 주로 부정적으로 취급되고 있다. 2003년 6월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민간단체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연대회의의 병역거부 관련 다큐멘터리 제작을 지원한 것과 관련하여 국회 법사위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 다큐멘터리 제작에 인권위가 예산을 지원했는데, 젊은이들의 병역기피 풍조에 동조하자는 것이냐”라며 한목소리로 성토하기도 했다. 이는 인권문제를 바라보는 현 입법부의 수준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국가인권위원회 또한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진정된 병역거부문제에 대해 아직도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관련하여 각국이 시행하고 있는 법과 관행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재검토하도록 촉구한 지난 58차 유엔인권위원회의 결의안[15] 내용을 상기해 볼 때 국가인권위원회의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을 이단으로 취급하고 있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 보수 기독교단의 대체복무제도 반대 입장[16]도 여전히 변화의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한편으로 병역거부는 최근 고조되고 있는 한국의 반전평화운동에 있어 주요한 실천방식으로서 확산되고 있다. 2002년 6월 두 여중생이 주한미군 장갑차에 치어 사망한 사건과 북한 핵문제를 둘러싸고 야기된 북한과 미국간의 군사적 긴장 고조 상황 등은 많은 한국인들로 하여금 군사적 방식에 의존하는 전통적인 안보정책에 의문을 갖도록 만들었으며 그 어느 때보다 반전과 평화를 염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게 되었다. 특히 정부와 의회가 2003년 4월과 올해 2월 두 차례에 걸쳐 통과시킨 이라크 파병 결정은 반전평화 운동이 크게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전쟁반대, 파병반대의 한 목소리를 모았으며 많은 이들이 인간방패를 자청하고 이라크로 향했다. 하지만 정부와 의회는 군사, 경제적으로 대미 의존도가 높은 한국 상황에서 국익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논리로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한국군 파병을 정당화했다. 뿐만 아니라 테러방지법[17], 집시법 개정[18] 등 한국의 인권, 평화 운동에 찬물을 끼얹는 몇 가지 조치를 단행했거나 진행 중이어서 시민단체들의 큰 반발을 사고 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군 입대를 앞둔 젊은이들에게 반전평화 신념의 실천으로서 많은 공감을 얻어 가고 있다. 2001년 말 비여호와의 증인 신도로서는 처음으로 오태양이 병역거부를 한 이후 현재까지 총 10명이 반전평화의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여 처벌받거나 재판 중에 있다. 2003년 11월에는 22세의 현역 군인인 강철민이 한국군 이라크 파병 결정에 반대하여 휴가 중 부대 복귀를 거부하고 병역거부를 선언하여 군무이탈죄 등으로 기소되기도 하였다. 자국의 국토와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대가 침략전쟁에 참여한다는 사실은 평범한 군인이었던 그로 하여금 군대의 역할과 그 일원인 자신의 위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한국군 이라크 파병 결정이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헌법에 명백히 위반되는 것으로서 파병결정이 철회될 때까지 군복무를 거부하겠다는 선언을 하였다. 한국사회에서 군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대사회적인 질문을 던진 강철민의 병역거부는 군 복무 중의 병역거부로서는 첫 번째 사례이다. 병역수행 중에 있는 사람도 병역을 거부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는 1998년 유엔인권위원회 결의안[19]에 근거해 볼 때 현재 강철민에게 가해지고 있는 군 당국의 처벌은 국제인권규약 체결국으로서의 의무에 명백히 위배되는 것임에 분명하다. 2001년 여호와의 증인 병역거부자들의 실상이 알려지면서 부각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이제 인권에 대한 존중과 보호의 문제임과 동시에 이를 바탕으로 한 평화운동으로서 새롭게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수감자 현황 (2004년 2월 15일 현재 521명)
법무부 가석방 심사 기준표
병역거부자 대체복무제도에 대한 국방부 입장
최근 언론에서 사회적 이슈로 다루고 있는 특정 종교집단의 병역거부 문제가 "우리 사회의 병역의무에 대한 건전한 상식과 국가안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하여 국방부의 입장을 밝히고자 합니다. 병역의무는 "국가가 있어야 국민이 있다"는 민주주의 시민정신의 기초인 동시에 국가존립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합의인 것입니다. 우리가 수없이 많은 외침을 받고서도 오늘의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보편적이고 선량한 양심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며, 지금 이 시간에도 그들은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일각에서 병역(집총)거부자들을 처벌하는 것에 대해 전과자 양산 방지, 소수자의 인권 보호 등을 이유로 대체복무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이 문제가 인권문제, 국익보호 문제로 오도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병역제도는 그 나라의 정치․경제적 여건, 사회․문화적 전통, 안보여건 등 복합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데, 우리 나라의 병역거부자는 물론 세계 각국의 그들 어느 누구도 남북으로 분단된 특수한 우리의 안보환경과 병역의무 형평성 확보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기대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채 오히려, 누구나가 부담하는 병역의무 즉, 기초군사훈련과 복무만료 후 8년간의 예비군 임무까지 모두 면제하는 특혜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병역거부자들은 이에 대해 대체복무 기간을 장기화하고 열악한 복무분야에 근무하는 것으로 형평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복무기간이나 분야의 문제가 아니라 "과연 누가 생명을 담보로 군복무를 할 것인가"라는 국가존립의 문제와 직결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 사회에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다양한 종교가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종교와 정치의 분리는 물론 누구든지 종교에 의해 '차별'을 받아서도 안되지만 '특혜'를 부여하여서도 안 된다는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최근 병역거부 또는 징병제 반대 등과 관련하여 모임을 결성하거나 국제 연대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사회적인 관심이 확산되고 있지만, 우리는 무엇보다 지금 이 시간에도 국가안보를 위해 '민주국가 시민으로서 기본적인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병사들의 양심과 사기를 어떻게 보장해 줄 것인가"하는 것도 깊이 고민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병역거부 행위는 남북으로 분단된 특수한 우리의 안보환경 하에서 자유와 권리를 수호하기 위한 기본적인 의무이행을 거부하는 것으로, 이들에 대해 대체복무를 허용하는 것은 형평성차원에서도 수용할 수 없지만 병역거부 확산은 물론 특정 집단에 대한 특혜 시비로 국민통합을 저해하게될 것이므로 현재의 안보환경과 징병제 병역제도 하에서는 수용할 수 없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2001년 10월23일
[1]병역법 개정안이 2003년 8월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현역과 보충역의 복무기간이 각각 두 달씩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2003년 10월부터 현역병 복무기간은 육군 24개월, 해군 26개월, 공군 28개월이다. 육군과 달리 해군과 공군은 지원병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병역기간 단축은 지난 해 대선에서 여야가 공통으로 내놓은 공약사항이었다.
[2]2000년 『국방백서』
[4]별첨 1. 참조
[5]병역법 제76조
[6]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나동혁 및 대학생 예비 병역 거부 선언 기자회견 (2002. 9.12)
[7]법률 제4703호(1994.1.15 개정)에 의해 군형법 제44조의 법정 최고형이 2년에서 3년으로 상향 조정됨.
[8]병역법 시행령 제136조 2항
[9]별첨 2. 참조
[10]법무부 차별행위 개선 권고에 대한 회신(교화61490-24)
[11]국가인권위원회 2003년 7월 18일 보도자료, “법무부, 구금시설 내 소수종교 집회 허용”
[12]대법원선고도1534판결[항명] (1992. 9.14)
[13] 여호와의 증인에서 2004년 2월까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이들 수감된 병역거부자 외에 66명이 불구속으로 기소되었으며 89명이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14]별첨 3. 참고
[15]유엔인권위원회 2002/45호 결의
[16]별첨 4. 참고
[17]2002년 시민단체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국회에서 심의가 중단된 테러방지법이 2003년 중반에 재추진되었으나 올해 다시 시민단체들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정부는 테러방지법에 대한 도입의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이 테러방지법의 일부 조항들은 심각한 인권침해의 소지를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 ‘테러’와 ‘테러조직’의 개념을 극히 모호하게 규정하고 있으며, 국가정보원이 총괄하는 대테러센터로 하여금 테러를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적법한 정치활동조차 감시,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많은 인권단체들은 테러방지법이 테러와 거의 상관이 없으며 1990년대 초반 군사독재정권 말기부터 점차 축소되어 온 국가정보원의 권한을 다시 강화하기 위해 고안된 법안일 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18]2003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이 올해 3월부터 시행되었다. 이 법률에 따르면 △집회 중 사소한 방어적 폭력사태가 일어나더라도 이른바 '폭력시위'라는 구실로 당해 기간의 집회 시위가 금지되고 △주요도로에서는 질서유지인이 배치되는 평화행진도 금지되며 △초중고 학교시설과 군사시설 주변 집회가 금지되고 △대통령령에서 정하는 일정 수준 이상의 소음이 발생하는 집회도 금지되는 등 집회시위의 자유가 사실상 말살된다. 또 집회 신고를 한 달 전부터만 받도록 해 미리 일정과 장소를 정해야 하는 대규모 집회 준비가 어렵게 되었으며 외국 공관 주변에서는 공관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소규모 집회와 휴일 집회만 가능하게 되었다. 시민단체들은 이번에 개정된 집시법이 사실상 ‘집회시위금지법’으로써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크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시민불복종운동을 계획하고 있다.
[19]유엔인권위원회 1998년 결의 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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